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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페데스트리안 <The Pedestrian>

타이틀:
개발:
퍼블리셔:
가격:
20,500원
Kutar'k 필자: Kutar'k
Steam 프로필
The Pedestrian

지금도 많은 게이머들이 인디 게임에서 참신함을 요구하곤 한다. 흔히 인디 게임이 '도전'과 '모험'으로 대표되고 있기도 하고 실제로 인디 게임들 중에 그런 실험 정신으로 가득한 참신한 게임들이 많이 등장하기도 하니 그런 점에 있어 많은 이들이 인디 게임에 기대를 거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반드시 감안해야 할 사실은 있다.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신선할수록, 그 아이디어를 실제 게임으로 구현하기란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레벨 자체에 변화를 가하거나 특정 방식으로 레벨을 재구성한다는 아이디어가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아이디어가 아닐까 싶다. 바바 이즈 유(Baba is You)가 한 차례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긴 했지만, 여전히 고정된 레벨에 변화를 가한다는 컨셉은 참신하고 기발하며 누구나 한 번쯤 가볍게 생각해봤을 법한 아이디어일 것이다. 문제는 이걸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구현하냐일 것이다. 그래서 창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해 숨겨진 구역을 발견하고 레벨에 변화를 가하는 윈도우프레임(Windowframe)이라는 작은 게임이 잠깐이나마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밖에도 이와 같은 시도를 했던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부분 게임의 스케일이 플래시 게임 정도의 작은 규모였거나 기발한 컨셉을 구현해낸 실험작 선에서 그쳤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컨셉을 하나의 작품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보다 완성된 형태로 구현해낸 게임은 과연 언제쯤 등장할 수 있을까. 2020년의 시작과 함께 세상에 공개된 더 페데스트리안(The Pedestrian)을 플레이해봤다면, 그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올해'라고 대답해도 괜찮을 것 같다.

The Pedestrian
The Pedestrian

더 페데스트리안은 표지판 안에서만 움직이는 사람처럼 생긴 캐릭터를 조종해 표지판 안에 있는 퍼즐을 풀고 끊긴 전선을 이어 도시 곳곳의 누전을 수리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퍼즐 플랫포머 게임이다. 도심의 분위기를 세밀히 묘사한 고퀄리티의 그래픽과 그 분위기를 한껏 살려낸 재즈 풍의 음악이 돋보이는 가운데, 주어진 표지판을 적절히 배치하고 표지판과 표지판 사이를 연결해 알맞은 형태로 레벨을 재구성한 뒤 표지판 속 캐릭터를 움직여 퍼즐을 풀어나가는 게임플레이가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플레이어가 직접 레벨을 재구성하고 그렇게 재구성한 레벨 안을 돌아다닌다는 참신한 컨셉을 도심이라는 배경과 표지판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적절히 포장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게임들이 이전에는 대개 실험작으로 나왔던 역사를 생각해보면, 더 페데스트리안은 실험성 게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성된 게임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The Pedestrian 표지판 속 사람이 움직인다. 누구나 한 번 쯤 가볍게 떠올려 봤을 망상.
The Pedestrian 예상했던 것보다 패러디 같은 건 잘 없었다.

표지판을 통해 도시 곳곳을 돌아다닌다는 설정 때문인지 더 페데스트리안을 플레이하다 보면 넓은 대로변부터 퀴퀴한 창고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다양한 장소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퍼즐에 깊게 몰두하다 보면 뒷배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시야를 잠시 퍼즐 밖으로 돌리면 꽤 멋드러진 도심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게임의 스테이지라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표지판은 각 구역에 알맞게 배치돼 있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퍼즐을 푸는 과정에서 군데군데 배치된 장치들을 실제로 작동시키거나 끊긴 전선을 이어 전기를 수리하는 등, 표지판 안에서의 행동이 현실의 영역에도 적잖이 영향을 끼친다. 덕분에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퍼즐을 푼다는 느낌을 넘어 퍼즐을 통해 현실을 바꿔나가며 보다 입체적으로 게임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The Pedestrian 은근히 멋드러진 도심의 풍경.
The Pedestrian 배경을 잘 살펴보면 참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는 걸 알 수 있다. 지치지도 않나,

더 페데스트리안의 퍼즐은 각 구역마다 배치된 표지판을 알맞게 배치하고 연결하는 퍼즐 파트와 그렇게 재구성한 표지판들을 표지판 속 캐릭터를 직접 움직여 돌아다니는 퍼즐 플랫포머로 나뉘며, 필요에 따라 수시로 두 파트를 번갈아 조종하게 된다. 즉, 기존의 퍼즐 플랫포머에 퍼즐을 한 번 더 덧씌운 형태라고 봐도 좋다. 퍼즐 플랫포머에 바탕이 되는 레벨을 플레이어가 직접 알맞은 형태로 재구성하는 게임플레이는 그 자체로도 참신하게 다가오는 데다가, 이 게임플레이를 표지판이라는 익숙한 아이템을 활용해 구현해내면서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게임을 받아들이게 되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챙긴 모습이다.

여기에 레벨의 재구성이라는 참신한 발상에 여러 추가적인 매커니즘을 도입해 복합적인 응용 또한 충분히 제시하고 있다. 오로지 연결된 표지판으로만 넘어갈 수 있고 선을 끊는 순간 모든 행동이 취소되면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더 페데스트리안의 기본적인 규칙이지만, 차원문을 활용해 표지판의 연결 없이 다른 표지판으로 넘어갈 수도 있고 초록색 용액을 활용해 표지판 사이의 연결이 끊어져도 기존의 행동을 유지할 수도 있다. 물론 다양한 매커니즘이 도입되는 것은 그만큼 퍼즐이 복잡해지고 난이도가 어려워지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각 매커니즘이 추가될 때마다 해당 매커니즘을 설명하는 튜토리얼성 스테이지를 깔아두며 새로운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돕고 난이도의 급격한 상승을 막는다.

그 밖에 각 구역에 깔린 표지판이 여럿이고 전선이 얼기설기 얽혀 있거나 여러 물건들로 가로막혀 있어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기본적인 규칙만 파악한다면 퍼즐의 구조 자체는 단순해 그렇게까지 난이도가 어렵진 않은 게임이다. 특유의 참신한 컨셉을 이해하기 쉽게끔 구현해냈으며 다양한 매커니즘과 더불어 전반적인 레벨 디자인에 있어서도 많은 심혈을 기울인 모습이다. 덕분에 퍼즐 플랫포머로써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The Pedestrian 퍼즐 플랫포머에 퍼즐을 한 번 더 끼얹은 결과물.
The Pedestrian 선이 얼기설기 얽혀있어 복잡해보여도 실은 단순한 구조의 퍼즐.

그러다가 엔딩 직전에 갑작스레 게임의 시점이 1인칭으로 바뀌면서 표지판 속을 돌아다니던 캐릭터와 그 캐릭터의 실질적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을 번갈아 가며 조종하게 된다. 표지판 안의 '가상'과 표지판 밖의 '현실'이 서로 강력하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있어서는 제법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겠으나, 아무런 예고나 설명 없이 갑자기 시점이 바뀌다보니 여지껏 플랫포머 레벨만을 플레이해왔던 입장에선 적응하기가 다소 까다로울 수 있다.

게다가 기존의 플랫포머 파트와는 다르게 1인칭 시점의 레벨에 대해서는 어떠한 준비 과정이나 시연성 스테이지 같은 것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은데, 갑작스레 두 시점의 연계를 바탕으로 한 복합적인 구조의 레벨을 들이대는 꼴이니 여기서 오래 헤멜 여지도 다분하다. 서사적으로만 놓고 본다면 표지판 속 캐릭터에서 표지판 바깥의 인간으로 시점이 옮겨가는 과정은 큰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우나, 실질적인 게임플레이에 있어 시점이 넘어가는 것에 대한 대비는 다소 부족했던 셈이다.

The Pedestrian 동네사람들, 이것 좀 보세요! 엔딩 보려고 하니까 게임 장르가 바꼈잖아요!!!
The Pedestrian 1인칭 멀미를 강력히 호소하는 입장에서는 약간의 불쾌함마저 느껴졌다.

그래도 참신한 컨셉을 기반으로 한 퍼즐과 그 퍼즐의 존재를 받쳐주는 일련의 서사, 도심 곳곳을 적절히 묘사한 그래픽은 매우 훌륭하다고 할 만하다. 게임의 플레이타임은 3시간에서 4시간 정도로 아주 길진 않으나 퍼즐 플랫포머 게임으로써는 적절한 수준이다. 다만 이러한 핵심적인 요소들 이외에 다른 자잘한 부분들에 있어서는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더 페데스트리안의 음악은 도심 곳곳의 분위기를 적절히 반영하며 그 퀄리티가 제법 괜찮은 편이나, 문제는 음악이 반복적으로 재생되지 않아 하나의 퍼즐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다 보면 음악이 일절 흘러나오지 않을 때가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높은 난이도의 퍼즐에 오래 매달리다보면 상당히 심심하고 허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더 페데스트리안에는 다른 퍼즐 플랫포머 게임에 으레 있을 법한 챕터 선택이나 퍼즐 재시작 같은 기능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게임을 한 차례 클리어한 이후에는 무조건 처음부터 게임을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물론 게임 상에 수집거리라던가 숨겨진 퍼즐 같은 2회차 플레이를 유도하는 요소가 아예 없어 다시 게임을 즐길 만한 가치가 크지 않긴 하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퍼즐 플랫포머에 반드시 갖춰졌어야 할 기본적인 기능 몇 가지 정도는 마련해 놓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The Pedestrian 한창 집중하다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허전함이란...
The Pedestrian 챕터 선택이나 재시작 기능도 없는 마당에 레벨 에디터를 바라는 건 조금 욕심일지도.

더 페데스트리안은 레벨의 재배치와 재구성을 통해 적절히 레벨을 구성하는 퍼즐과 이동과 조사, 아이템 활용 등을 통해 장치를 작동시키며 앞으로 나아가는 퍼즐 플랫포머의 결합을 보여준 독특하면서도 참신한 면모를 지닌 인디 게임이다. 여기에 이런 독특한 아이디어를 도심과 표지판이라는 스킨을 씌워 보기 좋게 포장해냈으며, 재배치와 재구성이라는 게임플레이를 복합적으로 응용한 다양한 매커니즘과 완만한 난이도 상승을 통한 적절한 난이도 조절로 퍼즐 게임으로써의 완성도 또한 훌륭하다. 다만 맨 마지막의 1인칭 시점으로의 변화는 다소 당황스럽고 다른 플랫포머 게임들과는 다르게 수집 거리나 보너스 레벨 같은 추가 요소가 전혀 없어 조금 허전할 순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세운 퍼즐 플랫포머 게임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굉장히 만족스럽게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The Pedest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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