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원예가: 스트레인지 호티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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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원예가: 스트레인지 호티컬쳐

■ 미처 인식조차 못하던 직업을 체험해 보자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하면 역시 직접 체험해보기 어려운 것들을 대신해서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게임의 이러한 매력이 특히나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더욱 극대화된다고 보는 편이다. 게임을 통해서라면 기계공학이나 전기공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로켓을 조립하거나 로봇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공권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도시를 관리하거나 확장시킬 수도 있으며, 결혼을 하지 않아도 자식의 교육 방침을 결정하고 그 성장을 바라볼 수도 있다. 비록 게임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면이 많다곤 해도 실제로 체험해보기 어려운 것들을 게임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건 우리에게 확실한 즐거움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나아가 우리는 게임을 통해 미처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직업들을 대신 체험해보기도 한다. 특히 이 점을 핵심으로 내세우는 게임이 인디 게임 쪽에 꽤나 존재한다. 아닌말로 페이퍼, 플리즈(Papers, Please)라는 게임이 없었더라면 공산주의 국가의 출입을 관리하는 입국 심사원의 존재를 알아차리지조차 못했을 것이고, 19세기 유럽의 역사에 어느 정도 정통한 이들이라 할 지라도 크나큰 사고의 후속 조치를 담당하는 보험 조사원의 존재는 오브라 딘 호의 귀환(Return of The Obra Dinn)이라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나서야 깨달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하다하다 식물학자가 되어보는 인디 게임까지 등장했다. 제목에서부터 식물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는 기묘한 원예가(Strange Horticulture)는 그 제목처럼 기묘하면서도 어딘가 전문성이 엿보이는 식물을 매개로 한 게임임을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Strange Horticulture 해외여행도 잘 안 다녀온 내가 여권 심사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페이퍼, 플리즈(Papers, Please)]
Strange Horticulture 식물 감정으로 숲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기묘한 식물학자 [기묘한 원예가(Strange Horticulture)]
■ 식물이라는 소재+오컬트 요소

기묘한 원예가는 산과 강, 숲으로 가득한 작은 영지 속 식물 가게의 주인이 되어 새로운 식물 및 각 식물에 대한 단서를 확보하고, 식물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알맞은 식물을 추천해 주어야 하는 이색적인 컨셉의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면서도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식물이라는 소재를 내세운 점이 참신하게 다가오는 가운데 보유한 단서를 바탕으로 식물의 명칭을 파악하고 손님들의 요구에 맞는 식물을 제공해야 하는 게임 플레이는 페이퍼, 플리즈와 유사한 면이 있다. 여기에 마을의 안전을 위협하는 거대한 괴물의 존재나 사이비 종교 및 저주, 그리고 여러 식물들의 기묘한 효능 같은 오컬트 요소로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게임이기도 하다.

한편 기묘한 원예가는 한국어를 지원하는 게임인데, 식물의 이름이나 구역의 이름 같은 고유 명사를 제법 감각적으로 번역하고 있어 한국어 번역의 퀄리티는 좋은 편이다. 다만 일부 주요 상황에서 식물의 효능 같은 주요 단서를 정반대로 번역해놨다 보니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한 번 더 굴려야 하는 문제점이 존재하긴 한다.

Strange Horticulture 요지경 식물 가게
Strange Horticulture 은근히 식물과 오컬트는 잘 어울려?
■ 상상을 초월하는 식물들

기묘한 원예가에는 총 77종의 식물이 존재하는데, 드물게 실제로 존재하는 식물을 모티브로 한 것이 있긴 하나 대부분의 식물은 임의로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윤슬꽃이나 이슬놀 같은 그럴듯해 보이는 식물부터 농부의 한숨이나 마녀 장과처럼 판타지물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물이 게임에 존재하는데, 혹여나 실제로 존재할까 싶어 구글 등지를 통해 검색해 봐도 아무런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여인의 비탄' 같은 식물이 진짜 존재한다고 해도 조금 떨떠름할 것 같긴 하다.) 여기에 식물의 효능 또한 잠긴 자물쇠를 딴다거나 기억력을 증진/감퇴시킨다거나 저주를 부연한다는 등 기존의 상식을 초월하는 것들이 많다. 이는 오컬트의 색채가 강한 게임의 게임적 허용이라고 보고 넘어가는 편이 좋을 듯하다.

이와 별개로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획득하게 되는 꽃과 열매, 버섯 등은 각자 이파리와 줄기, 꽃잎의 색깔과 형태가 각기 다르고 특성과 효능이 다르다. 그리고 식물도감에는 각 식물의 핵심이라 할 만한 특징을 간결하면서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심지어 식물마다 그럴듯한 학명까지 부여돼있는 모습이다. 덕분에 식물학에 대한 전문성이 확 부각되면서 플레이어로 하여금 절로 식물학자가 된 듯한 기분에 들게 한다. 단순히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여러 식물의 외형과 특성을 아주 전문적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아마도 게임의 개발자가 식물학에 대한 지식이 굉장히 풍부했던 게 아닐까 싶다.

Strange Horticulture 식물 이름이ㅋㅋㅋ 주교의 파라솔
Strange Horticulture 색깔, 생김새, 학명까지
Strange Horticulture 개발자가 식물학 쪽에 조예가?
■ 놀라울 만한 몰입감!

이런 기묘한 원예가에서 플레이어는 가게에 찾아오는 이들로부터 새로운 식물의 위치에 대한 단서나 주요 정보를 확보하기도 하고, 적절한 식물을 찾고자 방문한 손님에게는 식물도감을 비롯한 모든 단서를 활용해 알맞은 식물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지의 지도를 펼쳐 진행하는 탐험을 통해서는 확보한 단서를 해석해 알맞은 위치를 찍어 새로운 식물을 획득하기도 한다. 특히나 기묘한 원예가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식물 제공을 위해선 손님의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식물도감에 적힌 식물의 색깔과 형태, 특징과 효능, 그리고 학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를 총동원해야 한다. 게다가 원래 찾고자 하는 식물과 유사한 형태와 특징을 지닌 식물이 종종 존재해 헷갈림을 유발하기까지 하니 식물을 찾는 데 있어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게임을 좀 더 진행하다 보면 식물 가게에 보유한 식물의 종류가 점점 늘어나고, 고객들의 요구도 점차 다양해진다. 일부 특별한 퍼즐을 해결하기 위해 식물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야 할 때도 있고 이후 세 가지 식물을 섞는 비약 제조 수수께끼까지 등장하면서 식물을 감정하고 고르는 재미를 한 단계 확장하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식물을 감정하는 게임 플레이로 구현할 수 있는 건 전부 구현했다고 할 수 있고,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식물의 향과 효능이 천천히 몸에 배듯 게임에 스며들듯이 몰입하게 된다. 이는 새로운 식물을 확보하고 다양한 식물을 감정하며 알맞은 식물을 손님에게 제공하는 게임 플레이를 간결하면서도 전문성이 돋보이는 방향으로 구현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식물에 관한 모든 요소들을 샅샅히 파악해야
Strange Horticulture 딱 보물찾기 하는 기분
Strange Horticulture 식물의 향이 조금씩 몸에 배이듯 게임에 몰입한다
■ 자잘하게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가 존재

다만 식물을 감정하는 게임 플레이에 너무 큰 공을 들인 탓인지 캐릭터의 개성과 스토리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되진 못한다. 기묘한 원예가에는 주기적으로 식물 가게에 찾아오며 주인공과 소통하고 이야기의 향방을 결정짓는 캐릭터들이 몇몇 존재하는데, 다른 일회성 캐릭터들에 비해 자주 얼굴을 비춘다는 것 말고는 크게 차별되는 부분이 없어 캐릭터의 개성이 희미하게 다가온다. 약력을 통해 캐릭터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고 주요 상황에서 제공하는 식물의 종류에 따라 캐릭터의 향방과 엔딩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캐릭터의 비중을 드러내고 매력을 발산하는 데 있어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멀티 엔딩이 존재하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다시 시작해봐야 이야기의 흐름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뿐더러 달라진 결말이 크게 와닿지도 않는다. 결국 식물을 감정하는 게임 플레이 이외에 다회차 플레이의 가치는 조금 떨어진다.

그 밖에 게임상의 날짜로 16일이면 곧바로 엔딩으로 직행하는 구조다보니 게임이 조금 짧게 느껴질 순 있다. 그나마 엔딩 이후 추가 플레이로 미처 감정하지 못한 식물을 더 감정할 여지를 제공한 건 다행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 날짜가 지날 때마다 식물의 배치가 뒤엉켜 원하는대로 식물을 정렬하기가 조금 까다롭고 게임을 껐다 킬 때마다 언어 설정이 다시 영어로 되돌아가는 등, 자잘하게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가 존재한다.

Strange Horticulture 나름 캐릭터들이 존재하지만...
Strange Horticulture 실제로 존재해도 좋을 것들?
■ 무언가를 조사하고 발견하는 재미를 지닌 경이로운 게임

기묘한 원예가는 각기 색깔과 형태, 효능이 다른 식물을 감정하는 이색적인 컨셉을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오컬트 분위기와 더불어 식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현실성과 전문성이 묻어 나오는 게임 플레이로 구현해 참신하면서도 높은 경지의 재미를 선사하는 훌륭한 인디 게임이다. 암호에 가까운 단서를 바탕으로 탐험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찾아 새로운 식물을 확보하는 재미와 식물도감에 실려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식물의 명칭을 정확히 파악하고 가게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알맞은 식물을 제공하는 재미가 모두 뛰어나다. 다시 말해 기묘한 원예가는 식물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어느샌가 식물학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게 만드는 기묘한 게임이고, 오컬트 계열 게임을 선호하거나 다른 게임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컨셉을 내세운 게임을 원하는 이들, 혹은 무언가를 조사하고 발견하는 재미를 지닌 게임을 바라는 이들 모두에게 강력히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Strange Horticulture
Kutar'k 필자: Kutar'k
Steam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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